다섯 번째 생일
2024.2.16
난 사실 여태까지 기록하고 싶은 욕구의 원인이 나중에 잘 보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 몇 시에 어디로 이동했고, 어떤 음식을 먹었고, 무엇을 보았고 이런 것들을 적었다. 내가 했던 것들, 사실들 위주로. 그런데 오늘 엄마가 나의 옛 일기 세 개의 사진을 보내줬는데, 그걸 보고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란 나중에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 때 나의 느낌들을 적는 것이다. 현재 나의 생각, 현재 나의 감정들을 ‘현재’ 정리하고자 할 때 적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어떤 거리낌도 없이 솔직하게 적은 나의 일기를 다시 보니, 그 때는 정말 솔직하게 나의 느낌을 잘 적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이게 맞나? 틀리나? 를 생각해가며 글을 적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여행도 사실만 기록하였다. 몇 시에 어디 가서 뭐 먹었음 이런식이랄까? 2010년도 민규와 함께 간 유럽 여행은 첫 여행이기도 했고, 넘 신났기 때문에 나의 느낌들을 적은 일기가 아직 구글에 남아있는데, 오히려 그런 글들이 그 여행을 더 잘 기억나게 한다. 어떤 느낌도 없는 사실들 위주의 기록은 먹은 사진을 보고도 이걸 먹었었나? 하는 기분까지 든다.
오션파크. 홍콩에 와서 디즈니랜드보다 먼저 가봤던 곳. 린지가 만 두 살 때쯤 처음 가봤고, 한 두 어번 더 갔었는데, 최근 린지가 오션파크 이야기를 몇 번 했었더랬다. 다섯 번 째 생일을 맞이한 오늘은 디즈니랜드를 가고싶어했었는데, 예약이 안되서 오션파크로 향했다. 생일자는 무료 입장이 가능해서 한 번쯤 가려고 했었는데 오늘이 마침 좋다. 일어나자마자 밥도 안먹고 부랴부랴 챙겨서 나왔다. 아침에 밥 챙겨먹고 나오는 건 왜이렇게 어려운 일인 것일까?? 전날 아침메뉴를 항상 정해놔야겠다. 두유, 떡, 사과, 양배추 이런식으로.
오늘은 항상 가던 루트가 아닌 새로운 루트로 다녀보기로 한다. 늘 가던 길도 새로운 길로 가면 그것이 여행이라 했으니. 늘 들어가자마자 아쿠아리움으로 향했었는데, 오늘은 whisker’s harbour로 먼저 들어갔다. 2005년에 디즈니랜드가 오픈 하고 나서 5.5 billion hkd 를 들여서 재개발을 했는데 그 때 children’s area 였던 곳이 whisker’s harbour 로 개장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게 happy new year 북도 있고, 아이스크림가게, 놀이터 등이 있다. 우리도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념 선물을 사주려고 골라보라고 했더니, 이건 할아버지 할머니 돈으로 사는 거야 ! 라고 말한다. 오늘 엄마가 200만원 보내주고 마이클 할아버지도 50만원 보내주셨으니 린지가 사고 싶은 것을 사줄 생각이다. 본인이 알아서 이건 할아버지 할머니 돈이라고 정리까지 하다니. 어느 정도 고르더니, 나머지는 위시리스트에 담아 놓겠다고 한다. 본인이 알아서 절제까지.
집에 가는 길에 사주려고 했던 핫초코, 마시멜로 세트는 sold out 이었다. 당연히 있을 줄 알고, 들어오자마자 먹고 싶다고 한 것을 집에 갈 때까지 참게 했는데.. 미안했는데, 다음에 먹자고 먼저 말해주는 린지다. 유모차를 밀면서 언덕을 올라갈 때는 뒤를 돌아보며, 엄마 힘들어? 하고 묻는 린지. (내리지는 않더라..) 하루 종일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고, 보고, 먹고, 놀았다. 오션파크를 방문한 게 다섯 번정도 되려나?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오늘이 가장 잘, 놀았던 것 같다. 날씨도 좋았고 린지 컨디션도 좋고. 이제 하루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는 나이가 되었네. 다음에 오면 아쿠아리움 레스토랑에서 여유롭게 물고기가 흐느적대는 것을 보면서 밥을 먹어봐도 좋을 듯하다. 마침 그 레스토랑에서 파킹 리딤 이벤트도 하니까 좋은 기회일 듯하다. 한 번 봤던 아쿠아리움을 왜 또 가야되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럼 왜 한 번 들은 음악을 또 듣고 한 번 본 그림을 또 보나? 라는 남편의 대답. 그렇다면 다음에는 레스토랑에 앉아서 물고기가 흐느적대는 것을 감상을 한 번 해봐야겠다. 400종이 넘는 5000 마리 정도의 물고기가 있고 세계 최초 360도 워터 스크린이라니. 다음에는 더 제대로 감상해보겠다.
오션파크는 위치가 좋다. 집에서 25분 정도면 갈 수 있으니 아주 가까워서 좋다. 그리고 summit area 에서 내려다보는 오션 뷰가 아주 좋다. 오늘 타진 않았지만 전망대같은 놀이기구를 타고 위에서 쭉 둘러보면 경치가 아주 좋다. 그래서 summit 에서는 항상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기억이 난다.
여유롭게 린지와 둘이 다녀서 행복한 하루였다. 아침엔 미역국을 못끓여준게 내심 미안하고 마음이 못내 불편하고 못난 엄마인 것 같았는데, 린지가 원하는 걸 해주는 하루가 되자고 결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미역국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생일인 린지가 원하는 걸 해주면 되지 !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내 마음이 어떤지,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고 행복하자 우리 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