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사는 것이 다 좋지만, 하나 단점은 한국 종이책을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수도 있고 서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 집어 오는 날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한국책을 보기가 어렵다. 한국에 가서 가져오자니, 캐리어에는 내 필수품조차 뒷전이고 모두 린지의 물건이기 때문에 책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구독하게 된 예스24 크레마클럽! 첫 화면을 둘러보다 "기록" 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클릭하게 된 책이다. 학창시절엔 무려 필기의 여왕이라 불렸을 만큼 필기를 잘해서 친구들이 노트 좀 빌려달라고 말하곤 했었고,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던 것도 즐기던 나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기록"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낯설게만 느껴지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늘 기록욕구에 목말라있던 차에 거인의 노트라는 책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기록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매일 일상의 기록을 이제부터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읽고서 그 날의 일상을 기록하는데, 린지가 중국어를 배우면서 "I know everything" 이라며 자신감 붙어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중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고 속상해하더니, 이제 자신감이 붙어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소소한 일상들 속에서도 우리는 매 순간 생각하고 많은 감정들을 느끼는데, 이것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하게 되니 나의 하루가 특별한 하루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기록할 때도 핵심만 간단히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 키워드 사이 사이의 빈 공간을 내 생각으로 채우게 될 때 그것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고 했다. 또한 오독을 두려워하지말고, 저자의 의도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말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키워드로 적는 것이다. 강의를 들을 때도 그대로 베껴서 필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키워드를 필기하고 빈 공간은 나의 생각으로 채워야한다는 것이다. 기억하지 않기 위해 하는 기록은 무쓸모라는 것이 와닿았다. 그렇다면 과연 학창시절의 필기의 여왕이었던 내가 과연 정말 필기의 여왕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완벽하게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문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다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 생각에 빠져들기도 하는 경험을 했다. 린지가 크는 동안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나의 욕망" 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어쩌면 "욕망"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잠재웠던 것은 아닐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두려움도 많아서 회피하고 눌러놓았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동안 미뤄온채 늘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기록욕구를 이제부터는 마음 속에 가지고만 있지 않고 실행해보려고 한다. 많은 생각을 하느라 바쁜 나의 머릿속을 이제부터 기록과 함께 정리를 해야겠다. 소소하지만 특별한 나의 하루 하루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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